당분간은 운천동에서 _ 이옥수 - 이옥수 이번에 나에게 주어진 삶은 사실 어마어마하게 놀라운데,아직 그것의 모두를 목도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머무는 시간과 마주하는 공간의 현재를 포착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운천동은 매우 의미있는 곳이다.2018년부터 꾸준히 아카이빙 작업을 하며 그 무엇도 헛된 것이 없었으며골목에서 카메라를 든 채 머뭇거리는 순간까지 오롯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만큼. 모든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은 공간의 시간성을 포착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공간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그 사이, 틈 같은 곳을 좋아한다. 여백이 되기도 하고, 풍경이 되기도 하며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그 사이에서 우리는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게 된다. 나는 그것을 도시나 마을 속의 유격이라 부른다. 마을은 마치 메커니즘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그래서 마을의 틈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조급했던 삶을 너그럽게 만든다. 대문에 아무렇게나 붙은 전단지를 별 말 없이 떼어내고길고양이를 위해 깨끗한 우유와 사료를 준비하는 일 같은 것들. 오로지 오롯이 동네에서 가능한 일들. 그래서 고층아파트가 아닌작은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들을 찾아볼 수 있는 운천동에서는 비슷한 집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지닌다. 닮은 듯 다른 형태의 집에서사람들은 작은 화분을 키우고, 각기 다른 명패를 붙이고, 창가에 취향이 묻어나는 커튼을 드리운다. 마당에 쏟아지는 햇살의 길이와 지붕에 드리운 나무 그늘의 농담은 다르겠지만골목을 헤매듯 지나가는 마을의 하늘은 같은 걸음걸이로 우리의 일상을 지난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이곳에 머무는 온도나 바람의 속도 같은 것을 기록하고 싶다고. 그러니 당분간은 이곳에서.
원더러스트 WANDERL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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