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너의 이름을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렀어.함께 사는 부모님께는 출근한다고 해놓고 갑자기 회사에 연차를 내버리고 지금 이곳에 와 있는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야. 나는 우리의 관계가 지긋지긋해져서 몇 개 남지도 않은 연차까지 써버리며 너를 떠나고 싶었나봐. 그런데도 여기까지 오는 내내 네 생각이 났고, 붉은 벽돌의 주택들을 지날 때마다 이런 집에 살고 싶다던 네 말이 떠올랐고, 고양이들이 잔뜩 있는 카페를 보면서는 너의 반려묘인 제제와 닮은 고양이를 찾으려 애썼지.나는 지리멸렬하다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정작 그런 상황이나 관계는 몹시도 경계해. 하지만 너는 그것을 무너뜨리고 나를 지리멸렬하게 만들어. 여기는 운천동이야, 엄청 조용한 동네야. 별다른 상업시설도 없고,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 같은 것도 없어. 그런데 갑자기 이 골목의 정적을 깨뜨리고 싶을 만큼 나는 너에 대한 서운함 같은 게 차 있어. 전화 걸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너에게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차마 그러지 못해서 나는 이렇게 편지를 써.어쩌면 전하지 못할 거야. 전할 리 없겠지. 나는 데이트에 한참을 늦어버린, 그 이유가 늦잠이라는 너의 문자메시지에도 “괜찮아, 피곤하면 다음에 만날까?”이런 말이나 늘어놓곤 했잖아.나는 왜 솔직하지 못 했을까. 왜 짜증난다, 서운하다 말하지 못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너에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나에게 화가 났어. 데이트에 매번 늦는 너에게 화가 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는 내게 화가 났어.그래,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건, 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인 것 같아. 아, 이거 봐. 나는 또,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 같다,라고 해버렸어. 이 엉망진창인 편지만큼이나 내 마음도 엉망이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이 편지에 마침표를 찍고, 다시 돌아가서 너를 만나면 나는 헤어지자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못할 거야. 차라리 내가 이 편지를 네게 전할 수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너는 이런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을 텐데.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이런 연애를 바랐던 건 아무도 없잖아.우리는 또 지리멸렬한 연애를 계속하겠지, 네가 그만하자는 말을 하기 전까지. 아주 따뜻한 커피가 나왔어, 혹시나 네가 이 편지를 읽는다면 그날의 나는 오늘의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겠지. 커피를 마실게. 제이, 말한 적 있었나? 나는 너와 함께할 때가 아니면, 한여름에도 아주 뜨거운 커피만 마셔. 내가 주문해주는 차가운 커피는 여전히 힘들어. 내 취향을 기억 못하는 너, 그것조차 말 못하는 나. 이 연애야 말로 정말 지리멸렬하다.안녕.이 말처럼 이 연애를 우리는 어쩌면 좋을까. - 작가: 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