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푸른 여름이었다 _ 햇빛 - 햇빛 나는 가끔 익숙해진 것들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어느 날 발견한 오래된 앨범을한참 붙잡고 추억을 여행하는 것처럼 익숙함만이 줄 수 있는 새로움이 있다고 믿는다.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작은 기대감을 안은 채운천동의 첫 장을 펼쳐본다. 시간이 꽤 흐른 후에도 사진들을 보며 선명하게 추억할 수 있도록 그날의 나를 위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오래 두고 보고 싶은 마음으로 처음 기록을 시작한 곳은 놀이터가 있는 공원이었다.공원이 시작되는 곳에 늘 있는 이름 모를 꽃이 새삼 반가웠다. 공원은 온통 푸르렀다.유독 하늘이 파랬던 여름 날, 빛이 닿는 곳마다 초록색이 선명해지는 나뭇잎을 보며 햇빛마저 푸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 커버려서, 벌레가 무서운 어른이 되어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분명 동네 어린 친구들의 기억 속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소일 것이라고 믿는다.겪지도 않은 추억에 잠기는 곳이다. 프레임에 무엇이 걸려도 전부 그럴듯하게 만드는 완벽한 하늘색. 운천동은 화분의 동네이다.실외기에도 여백 없이 가득 찬, 색도 모양도 다른 화분들이전부 생기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애정을 받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여기도 화분, 저기도 화분, 전부 화분.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종류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일까? 종종 어떤 화분들은 담장 안에 다 담기지 못해 삐져나오고는 한다.그 모양새를 보면 누군가의 반려동물들이 빼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떠올라저 반려 식물도 사람 구경을 하고 있나 싶다. 운천동 주택가에서 잘 키운 포도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역시나 가득한 화분들과 특별한 포도. '여름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설명하고 싶은 사진 한 장.보자마자 생각나는 문장이었다. 나는 길치라서 늘 다니던 골목도 여행자의 기분이 되어 바라볼 때가 있다.또 길을 잊은 여행자의 눈에 들어온 그림 같은 운천동의 골목. 사라지는 중인지 새롭게 무언가 시작되는 곳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변화하는 공간은 늘 아쉽다. 그러니 담아두어야지. 처음 이 집의 창문을 이렇게 만들자고 한 사람은 누구일지 궁금하게 만든다.운천동에는 이렇게 모양도, 크기도 다른 창문들이 한 집에 모여 산다. 작은 창문과 큰 창문, 그 앞에 놓인 자전거를 찍으려다 발견한 크기가 다른 창문들.공평하게 단열재가 붙어있는 걸 보면 작은 창문은 어느 방의 창문일까 궁금해진다. 누군가가 직접 개조한 것인지 판매하는 오토바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주인은 동남아 여행을 인상 깊게 다녀오신 분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익숙한 동네에서 느껴지는 낯선 나라의 분위기. 떼었다 붙였다 했던 수많은 흔적들이 남아있지만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없다.얼마나 많은 전단지가 이곳에 머물렀을 지 상상하니 괜히 아쉬웠다. 운천동에 무지개가 떴다.쓰레기가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쓰레기 근처에 생긴 무지개라니 꽤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우편함은 빨강이나 회색을 주로 보았던 것 같은데 파란색은 본 적 없다.길을 오가며 눈에 밟혔던 것이라 기억해두기로 했다. 주차금지용인지 잠시 쉬는 공간인지 모르겠지만 화분들과 의자 색과 모양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다.저 의자에 앉아 사색에 잠기면 마음이 여유로워질 것 같다. 집집마다 주차금지 사인이 다른 건 꽤 흥미로운 볼거리라고 생각한다.멀리서 봤을 땐 의자와 테이블처럼 보여서 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차금지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이곳의 주차금지 사인은 계단만 남은 어린이용 미끄럼틀과 머리가 두 개 달린 표지판이다.미끄럼틀이 날아갈까 봐 아랫부분은 받쳐두고 윗부분은 버리기 아까웠나 보다.결과적으로 머리가 두 개라 좀 더 강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