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곳으로 도망친 거야. 비 오던 어느 초여름 밤,너와 함께 차 안에 앉아 이정봉이 부른 '어떤가요?'와 박화요비가 리메이크한 버전을 번갈아가며 듣던 그날.우리는 가사를 곱씹으며 두 가수의 감정에 빠져들어 미어지는 기분을 나누었지.나는 그 노랫말처럼, 곧, 우리 사이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그리고 노랫말과는 다르게, 우리가 끝이 난 후에는, 그 어떤 사람들에게서도 너의 소식을 들을 수 없을 거란 사실은, 나를 너무나 두렵게 했어.그 노랫말 속 주인공은 사람들에게 그대의 소식을 듣느라 목이 메는데, 나는 그것조차 없을 거란 게, 너와 나 사이엔 지금 이 순간 말고는 연결되어 있는 어떠한 실도 없다는 게, 매번 나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어. 내가 아는 너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진실이었고, 어디서부터 거짓이었을까?문학을 좋아해서 첫 만남 장소마저 문학관으로 정했던, 한때 기형도를 자신과 동일시했다던 너는, 나를 통해 너만 아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갔던 걸까.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고 싶다던 건, 너만 읽을 수 있는 어떤 문학 같은 거였을까. 그렇다면 거기에 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겨져있니?너의 문학 속 나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네 이름이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나의 이야기는 결국 허구의 소설이 되어버렸어. 너는 스스로를 영화 클로저에 나오는 여주인공쯤으로 생각했던 걸까? 덕분에, 나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던 너는,비 온 여름날의 짙은 녹음 같은 색에,순수하면서도 무언가를 갈망하던 눈을 가진,그래서 눈을 맞추면 끊임없이 빠져들게 하던,무서운 소년 같던 너는.가면 아래 겨울의 한기를 숨긴, 얕고 후진 어른이 되어버렸어.너의 한기를 알아본 나의 눈을 원망하게 되더라. 그런데도 금방 너를 버리지 못한 까닭은,너의 이야기 속 나만큼은 아무것도 모르길 바랐기 때문이야.적어도 그 이야기 속 네가 그리고 있는 나는, 거짓은 모른 채 끝을 맞이하길 바랐어. 너 또한 후진 어른이라는 걸 끝까지 모른 채 말야. 그래서 도망치게 됐어. 진실은 숨기고, 너처럼 거짓을 고하고, 너에게서 도망쳤어. 네 이야기는 황급히 마무리 되었겠지. 그래서 언짢았니? 그랬다면 미안해. 도망친 벌로, 나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네 소식을 평생 궁금해 할 것 같아. 이정도면 충분하려나. 너에게는 어떤 대가가 내려졌을까. 내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꼬이게 만든 벌 같은 거 말야. 나를 잃은 것으로 슬퍼했을까? 아냐, 슬퍼하지 않았을 거란 것 정도는 알아. 비록 네 모습이 거짓으로 점철되었을지언정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어. 이곳 골목은 작고 예쁜 카페가 많아. 상점의 노란 전구와 비에 젖은 아스팔트, 물기를 머금은 가로수의 색이 그때의 너를 떠오르게 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썼어.박화요비의 그 노래가 최근에 리메이크 되어 여기저기서 들리던데, 너도 어딜 가던 그 노래가 따라다니고 있니? 네가 그 노래를 들을 때마나 내 생각이 났음 좋겠다. 부디 그러길 바라며, 이만 인사할게. 안녕. - 작가: 박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