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저를 기억하실진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교단에 계신지 꽤 오래되셨지요. 아직도 그 고등학교에 계신단 말을 건너 들었습니다. 수정이는 기억하시나요? 15년도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았던 반의 반장아이. 그 친구가 소식이 넓어 때때로 이것저것을 전해주곤 했습니다. 동창들의 소식이라거나 그런 이야기 말이죠. 저는 사실 그 애들에게 관심이 없고, 그 애들도 저라는 사람이 동창이라는 것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선생님께 펜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 않던 일을 해서일까요. 원래라면 저는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야 했습니다. 터미널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버스들이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길래 탔더니 전혀 엉뚱한 버스이지 않겠습니까. 바로 내릴 생각도 못하고 헤매었습니다. 사실 기억나지 않습니다. 헤매었을까요? 당황스러웠을까요? 얼른 내린다고 내린 것이 모르는 동네였습니다. 운천동, 이라는 동네는 들어본 적 있지만 와 본 적은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산 지 10년차지만 원체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적이 없습니다. 낯선 동네에 떨어져버리니 그제서야 황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하며 저도 모르게 골목으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곳을 걸어 들어갈 때가 아녔는데 말이죠. 요즘 날이 너무 덥지 않습니까. 오늘은 매우 덥습니다, 선생님. 타 도시에 있다고는 하지만 고향과 여긴 가까운 곳이니 날씨도 비슷할 가능성이 있겠죠. 여기는 오늘 비가 온다고 하더니 해가 내리쬐고 있습니다. 습기가 가득하고 햇볕이 뜨겁고, 입고 있는 옷이 기분 나쁘게 축축합니다. 이 동네는 높은 건물이 없습니다. 낮고 낮은 건물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가정집들에는 곳곳에 화분들이 있습니다. 방울토마토, 고추와 같은 채소 식물들과 제가 모르는 이름들의 꽃들이 있습니다. 오늘 비가 올까요. 저 식물들은 비가 오는 것이 좋은 일 아닐까요. 더운 중 발견한 문구샵에서 연필을 샀습니다. 원형의 몸체를 가진 연필이었습니다. 연필을 쓸 일이 없는데 저는 이것을 왜 샀을까요. 지금 너무 더워 들어온 카페 안에서 연필을 만져봅니다. 딱딱하고 각 없이 길게 쭉 뻗은 짙은 푸른색의 연필. 끝 단면의 색이 붉고 하얀 글씨로 ‘PEACE’라고 씌여진.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제자일 적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일이죠. 제가 그날 왜 하필 선생님께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제 담임 선생님이기 때문이었을까요. 당신이 반장과 그 외의 다른 아이들의 입시를 매우 신경쓰고 있었던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왜 저는 선생님께 그날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선생님께서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논의하기에 알맞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일단 당신의 담당과목은 수학이였고, 당신이 꽤나 신경쓰고 있었던 학생들은 내신이나 모의고사 점수가 높거나, 부모님의 직업이 특별하거나 대내외에서 수상한 경력이 많은, 입시에 유리한 학생들이었습니다.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선생이라도 입시에 유리한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것이죠. 저의 그 말은 선생님께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였을까요. 아십니까? 저는 그 당시까지 부모님께도 제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최초의 고백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공기 밖으로 내뱉어보는 말이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아름답고 비참하고 찬란하고 슬픈, 자음과 모음의 연속으로 만들어지는 문장과 이야기를 주변에 두고 싶다고. 나도 언젠가는 이러한 것을 쓰고 싶다고. 선생님. 당신의 답을 기억하지 못하시겠죠. 당신이 옆 반 담임 선생님께 수정이의 이름을 교문 앞 플랜카드에 걸리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교무실 안을 지나가다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똑똑하고 예쁜 그 아이를 아꼈습니다. 선생님도 그 아이를 매우 아끼지 않았습니까. 내신 성적이 좋고 전교회장을 한 덕에 수정이는 입시에 굉장히 유리한 학생이었으니 말입니다. 당시 우리 반의 자랑은 수정였습니다. 예쁘고, 당차고, 항상 밝고,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실력이 되는 당연한 아이. 수정이는 당시 당신의 말대로 교문 앞 플랜카드에 이름이 걸릴 만큼 좋은 대학에 갔습니다. 스무살에 고향을 떠나 타지생활을 시작한 수정이와는 가끔 통화를 하였는데, 그 때 마다 웃는 목소리로 “괜찮아, 좋아.”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 때부터 그 애는 괜찮지 않았다는걸 아무도 몰랐는데 말이죠. 그 애는 늘 “괜찮아.”라고 했습니다. 그걸 믿으면 안되었는데 말이죠. 아무도 몰랐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것일까요? 그랬어야 했을까요? 이제 마무리를 짓고 일어나겠습니다. 커피는 다 마셨고, 저는 이제 정말 나가야 합니다. 사실 제가 오늘 가야 할 곳은 수정이의 장례식장입니다. 아직도 선생님. 저는 믿기지가 않습니다.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여 남들이 다 아는 기업에 입사를 하고, 승진을 하고 살지 않았습니까. 모두가 말하는 성공적인 삶의 표본이 그 아이의 삶이었잖습니까. 무엇이 수정이가 그러한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일까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시길. - 작가: 남연정